213미터 상공(2)
그즈음 무미건조한 내게 사건하나가 집안에서 터졌습니다. 주인집 할머니의 횡사는 다음날 주민센터 노인돌봄 생활지원사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워낙 고령인데다 여러 개의 고질병을 앓고 있는 죽음은, 옆방에서 굼벵이처럼 살고 있는 내게까지 옮겨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무연고로 밝혀졌고 무연고 장례절차에 의해 시신은 화장터에서 한줌 재로 봉안시설의 봉안당으로 옮겨졌습니다.
워낙 남의 세상사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끼니때라도 해결한다는 생각에 귀찮은 걸음으로 따라 붙었습니다. 다락방 동네는 모두 시유지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지육신은 멀쩡한데 살아가겠다는 전투력이 제로인 나와 상담한 담당공무원은 차마 내치지 못하고 상관에게 보고도 미뤄둔 채 유야무야 종결로 마무리 짓고 말았습니다. 볼품없고 궁상맞고 처량하고 가련한 내게도 햇볕을 쬐려고 했는지 할머니가 남긴 세간을 필요한 만큼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게 맞지 않는 유품은 과감하게 유품관리사가 정리해 주었습니다.
무연고자 잔여재산을 국가귀속이라는 절차를 건너뛰고 장롱 밑에서 발견한 현금다발을 못 본 척 덮어버리고 가는 유품관리사의 등에 대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쌩큐’ 하긴 방세에서 해방되었다면 크게 몫 돈 쓰임새가 없을 듯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비축한다는 것은 내게도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고, 오늘보다 내일을 걱정하는 범부들의 형태겠지요. 단 한 번도 다음날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간신히 버티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런 내게 현금다발은 가당치 않는 부담이 되었고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괜히 잠자리마저 뒤흔들어 놓은 현금다발을 손에 쥐고 유품관리사가 있다면 정면에 대고 ‘쌩큐’가 아닌 ‘뻐큐’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였을 겁니다. 귀찮은 외출로 문밖을 나섭니다. 더부룩하고 개기름이 반질하고 땟국물을 앞세운 나는 주민센터 앞을 서성입니다. 까만 봉지 안에는 현금 다발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어느 장소에 두고 와야 될까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정면승부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 한 끼 배가 꺼지기 전에 마무리 짓고 싶었습니다.
번호표를 빼들고, 에어컨 바람에 빌붙는 빈대로 오해 받지 않으려고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내 번호가 호명되었을 때 담당 창구로 찾아가 까만 봉지를 밀어 넣었습니다. 솜털이 보송한 공무원은 폭발물이라도 본 듯 기겁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습니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보지 않고 짐작으로 쓴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실 더 흥미로운 것은 내 발걸음이 아니라 주민센터 안의 풍경이겠지요.
다락방 동네로 가기위해 골목으로 파고듭니다. 딸꾹질하는 해가 서산에서 딸꾹딸꾹 요동칩니다. 또 하루해를 살았습니다. 해가 진 어두운 골목에서 떠나는 기차소리는 여기까지 묻어납니다. 늘 신기했지요. 어디를 가기에 떠나고 어디를 오기에 돌아올까요. 낯 설은 시간을 자신에게 돌려놓는 사람들 틈에서 오늘도 벽에 바짝 붙어 목메고 비좁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다행히 길고양이들이 먹이 사냥을 나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위를 점거하지 못한 비루한 서열 탓에 길고양이들의 부재중은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막힌 숨이 쉬어지기도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