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안을 막론하고 여자가 있다는 존재감만으로 분위기가 활짝 피어나는 가 봅니다. 퀴퀴하고 척박한 영토에 장미의 출현이야 말로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는, 신분상승을 꾀하는 일이었습니다. 남루한 옷모양새는 여전했고 질리게 만드는 계단을 통과 해야만 만나는 다락방 동네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비좁고 답답한 지름길 골목과 길고양이들이 정한 먹이사슬에서는 항시 밀리지만 어항 속 산소기 역할을 하는 장미가 내게 찾아왔습니다. 꿈과 현실 속에서 갸웃거리며 꼬집은 허벅지는 기분 좋게 푸른 멍을 남기곤 했습니다.
왠지 멀찍이 떨어져 가야될 것 같은 무료급식소에서 각기 식판을 받아 마주 앉거나, 가급적 거리를 좁혔다고 생각한 의자에서 밥을 먹으면서 장미를 보호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적로부터 어떻게 보해해준다는 계획은 없지만 필요로 한 만큼의 거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장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었습니다. 한사람의 개체수가 늘었을 때 이제껏 절실하지 않았던 금전적 재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돈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진 못하지만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할 수단의 자금이 절실했습니다. 책임져야할 장미의 등장으로 마냥 무료급식소에 의존한다는 것은 버러지로 인정하는 꼴밖에 지나지 않기에 변화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변화를 모색하는 첫 번째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선풍기를 ‘회전’과 ‘강’에 맞춰두고 열기를 밖으로 내쫒기 시작했습니다. 장미가 앉아있는 지점을 꼭짓점이라 한다면, 최소한의 거리로 컴퍼스가 만들어 내는 원안에서 서성거려도 무방할 겁니다.
또한 굶주린 늑대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요.
그것은 매력적인 암컷에 대한 예우이고 본능적인 수컷의 영역표시이기도 합니다.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내게 비자금을 확보할 명분이기도 할 겁니다. 나는 숨을 멈췄고,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의식한 장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습니다. 순간, 숨죽이고 있던 야성이 득달같이 입술을 덮쳤습니다. 음식점에서 훔쳐온 생선을 지키기 위해 발톱과 이빨과 꼬리와 털을 곤두세우던 길고양이처럼 내 전신은 곤두세워진 채로 장미의 몸을 덮쳐눌렀습니다. 몇 마디 신음이 밖으로 새여 나왔지만 전심전력으로 다하는 질주본능 앞에서 장미의 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얼만지 모를 두둑한 돈이 내게 있었어요.”
팔베개를 하고 가슴에 파묻힌 장미의 가마를 보면서 불쑥 말을 던졌습니다. 장미의 시선이 내 콧구멍을 올려다봤습니다.
“며칠 전 주민센터에 현금다발을 두고 왔지요. 까만 봉지를 창구 안에 던져 넣으면서 기부라든지 돈의 용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찾으러 갈 겁니다. 동행해줄 거죠?”
“순순히 내어 줄까요?”
차마 원래주인이 주인집 할머니 돈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헝클어져 살아온 시간을 조금이라도 감추긴 위한 발버둥 같은 것이겠지요. 완전 맹탕이 아니라 미래를 기웃거린 흔적을 장미에게만 들키고 싶었습니다.
“부딪혀 보려 구요. 까만 봉지 주인을 알아보는 창구 직원에게 맡길 수밖에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