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미터 상공(5) 장미를 앞세운 당당한 외출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래로 떨어뜨리며 살았던 시선을 치뜨기도 하고, 삐딱한 고개로 건방지게 보이는 변화를 최근 들어 스스로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장미를 품고부터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한사람의 식솔을 거느릴 준비된 몸가짐이 절실히 필요 했던가 봅니다. 이유 있는 명분을 찾아 뒤적거리던 시기에 장미가 안전핀을 뽑아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꾀죄죄하고 볼품없던 내 어깨가 한층 올라간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그렇다면 이십분 단축되는 골목을 굳이 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 이런 지름길도 있었어요?” 장미의 반색에 한껏 들뜬 걸음으로 골목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나란하게 두 사람이 지나치기에는 좁은 통로를 이번에는 내가 선두에 섰습니다. 어디에서 저런 용기와 자신감이 나오는지 장미도 신기해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길고양이 무리를 만났습니다. 역시나 인근 가게에서 훔쳐온 생선을 앞에 두고 꼬리를 곤두세운 먹이 싸움이 한창이었습니다. 심기를 건들릴 것 같아 벽에 붙어서 애벌레처럼 지나다녔던 예전에 나는, 지금 한 톨도 없습니다. 정글도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전사만 가득 존재할 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미가 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두 팔을 벌려 몸집을 부풀려보이게 했습니다. 곧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깔아뭉개듯 덤벼들었습니다.          마음 놓고 피할 공간도 없는 곳에서 비릿한 생선에 취해 먹이사냥에 들뜬 자신들에게 감히 덤벼드는 어제의 약골, 맞습니까? 오늘만 간신히 버티며 형편없이 몰락을 거듭하던, 지푸라기라 해도 반격조차 없었던 저 인간, 맞습니까? 서로의 분열을 조장하던 찢어발긴 생선을 버려둔 채 일제히 길고양이들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맹수의 본능적인 야성이 꿈틀대고 이미 서열싸움에서 바닥을 치던 인간에게 자신들의 영역을 내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가 봅니다. 한 몸처럼 담벼락에 배수진을 친 그들만의 공격태세로 전환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후회를 했습니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그들의 눈치를 본 걸음이 옳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부딪힘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오빠, 물러서지 말고 힘내요.” 등 뒤에 있는 장미의 이 한마디에 천군만마를 몰고 온 셈입니다.  꼿꼿하고 당당하게 한발로 차고 오르는 무용수처럼 공중으로 점프를 한 몸뚱이를 그대로, 길고양이 무리 속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 무게만으로 얼마나 큰 충격이 가해질지 나는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버려진 생선 대가리보다 하찮게 여기던, ‘을’도 아니고 ‘병’도 아닌 ‘정’의 심판이라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외마디 비명과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가 뒤엉켜 아비규환을 연상하게 했지만 내가 이제껏 받아온 수모에 비하면 반에 반도 돌려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박상정도로 장미가 내 몸을 훑고는 진단을 내려주었습니다. 한동안 길고양이들은 골목을 찾지 않을 겁니다. 자신들이 매긴 인간들의 순위도 다시 생각하겠지요. 훗날 아기고양이들이 태어났을 때 멋모르는 호기심으로 다시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패기가 남아 있다면 언제든지 손을 봐줄 의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토록 감격할 정도로 대견할 수가 없습니다. 맡긴 돈을 찾으러 장미와, 이제 주민센터로 큰 걸음을 옮깁니다. 가로수 배롱나무 꽃은 칠월 말미에 닿아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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