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미터 상공(6)인간이 가져온 재앙으로 완전히 미처 버린 최악의 기온상승에, 여름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아스팔트를 따라 걸으면서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가는 짜증이 잠깐 밀려왔지만 장미의 얼굴에서 위안을 받아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을 막 넘긴 주민센터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더 많았습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주민센터 입구에서 잠시 멈춰 호흡을 정리했습니다.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는 장미를 보면서 든든한 응원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자동출입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 번호표를 빼들었습니다. 몰염치한 더위가 에어컨 바람 안에선 순한 양으로 길들어져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먼저 창구 여직원을 찾았습니다. 까만 봉지 안에 현금다발을 던져두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던 나는, 솔직히 여직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날의 동선으로 짐작이 되는 여직원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내 번호가 불러지고 창구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앞에 놓인 의자를 무시하고 선채로 여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상냥한 여직원의 말에 용기를 얻어 더욱 애절한 눈빛으로 말문을 뗐습니다. “혹시 기억하지 않나요? 얼마 전, 까만 봉지 안에 들은 돈을 두고 간적이 있어요.”
주인집 할머니가 남긴 무연고자 잔여재산이라는 사실과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지 않고 주민센터 창구에 밀어 넣었기에, 미루어 짐작할 액수도 깜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필요한 분명한 이유가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장미가 있기에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더 강경하고 억센 말투로 동장을 노려봤습니다. 조금 전 길고양이들에게 혼쭐을 내듯이 어제까지 비루하게 살아온 시간들을 떨쳐내고 싶었습니다.“이것 보세요. 한푼 두푼 모아 좋은 일에 써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돈쓸 일이 생겨 내 돈 돌려달라는데 왜 이리 절차가 까다로운 겁니까? 까만 봉지와 창구직원의 증언만 있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직위로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 돈이 이미 나갔다면 몰라도 물색 중인, 돈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동장은 여기저기 전화로 의논을 한 뒤 입회자 두 명을 참석시킨 후에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까만 봉지가 아닌 서류봉투에 ‘칠백이십 사 만원이라 적혀있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