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미터 상공(10) 장미의 걸음을 쫓았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다락방동네를 벗어나자 현기증 나는 돌계단이 가파르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난간을 잡고 힘겹게 내려가는 동네 노인들보다 무릎관절이 아직은 튼튼한 가 봅니다. 볼멘 목소리처럼 퉁퉁 거리며 아랫동네 입구까지 닿았습니다. 좁은 골목으로 빠져들면 이십분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기에 쉽게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약속시간을 잡고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랫동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은 은근히 다락방동네 사람들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길고양이들이 생선가게에서 훔쳐온 생선을 두고 서열싸움에 한창입니다.   장미를 만나기전에는 벽에 바짝 붙어 피해갔지만 지금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생선을 앞에 두고 길을 터주기에는 죽기보다 싫겠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든 덕분에 자신들보다 높은 서열로 이미 인정해주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뒤에서 조종하는 장미를 더 높은 서열에 두고 극진히 떠받는 몸짓이 드러났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불만스럽지 않았습니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훤히 뚫린 아랫동네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듯합니다. 늘 볼 때마다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근본부터 다를 거라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장미가 멈춘 붉은 벽돌 주택은 반 지하를 품고 있었습니다. 같은 집이었지만 엄연히 차원이 다른, 같은 공간이었지만 철저히 배제된 반 지하에서 그 인간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해질 무렵 고물이나 종이박스를 줍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지만, 언제부터인가 늙은 고목처럼 변해가는 몰골을 지켜보며 즐기는 것도 복수의 한방법이라고 장미가 말했습니다.     이번 걸음은 집만 알아두는 것이라며 피곤해하는 장미를, 다락방동네 입구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반 지하 앞으로 스며들 듯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땅굴에서 빠져나오는 듯 힘겨운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칠이 벗겨진 마트카트기를 끌고 고단한 일상을 향해 무겁게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노인과 별반 다르지 않는 내가 혀를 찹니다. 거기에서 거기인 내가 노인의 삶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구부정한 어깨로 종이박스를 담고 어느 건물 현관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있는 노인을 멀리서 지켜보며, 내가 죽여야 될 대상이라 곱씹습니다.   장미는 두고 보는 쪽으로 선회했지만 응징해야하는 목표는 자명합니다. 장미의 어릴 적 몸과 마음을 꺾어놓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약한 상대였지만 아량과 동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세상을 향해 포효했고 망설임 없이 다가갔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주춤한다면 복수를 해준다고 공언한 각오가 약해질지 모릅니다. ‘쇠뿔도 단김에 뽑아라’ 말이 있듯 목을 꺾겠다는 큰 동작으로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습니다.   몇 걸음을 앞에 두고 큰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선 승용차가 카트기 손잡이를 잡은 노인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노인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차는 슬금슬금 달아나 버렸습니다. 예기치 않는 상황에 맞닥뜨린 나는 몇 걸음 앞에서 얼어붙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경찰차와 구급차 사이렌 속에서 빠져나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장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냥 권선징악으로 명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술인가 약인가에 취해 노인을 들이받은 인간은 누가 징벌합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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