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6)
들어오라고 승낙했는지, 부담스러워 거절했는지 약간 주춤거리는 사이 이웃집 여자가 불쑥 현관문을 닫고 들어섰다. 그 짧은 시간에 꾹꾹 눌러놓으며 살아왔던 욕정이 요동질을 치면서 ‘저요, 저요’ 마음껏 존재감을 알려왔다. 밀폐되었기에 어떠한 것도 허락된 공간은, 소심하게 살아왔던 나를 깡그리 무너뜨리고 뻔뻔스러운 겁탈자의 발톱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주저 없이 벽에 밀어붙이며 이웃집여자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눈곱만이라도 거부의사를 밝힌다면 무릎을 꿇을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한 번도 내 행동과 내 몸짓과 내 의사에 상관없이 눈치껏 살아왔다. 때리면 맞고,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비굴한 표정까지 서슴없이 그들의 재물이 되어주었다. 내안에 매복해있던 아우성을 그들도 몰랐지만 자신도 정작 모르고 살아왔다. 발이 채이고 찌그려 아무 곳에나 발길질해버리는 하나의 캔 깡통에 지나지 않았던 은둔형 외톨이의 능동적 의지가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 왔다. 상대방의 합의가 전제된다면 범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본능에 충실한 내 입술은 이웃집여자의 입술을 만나고 있었다.
요 며칠간, 표현봉조각가 작업실로 출근하면서부터 잠재적 범재자로 낙인찍힌 사회미첩족자의 근거 있는 타당성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비 대면일 수밖에 없는 은둔이 문을 열고 나오자 밝은 햇살 앞에서 서서히 정체가 드러났다. 기름과 물이 엉키지 못하듯 혼란스러운 정체에 대한 속수무책의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벗어나고 싶은 강한 저항이었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이기도 했다. 조각칼로 다듬어져 형체가 드러나는 조각상에서, 조각 부스러기가 널브러진 바닥촉감에서 미처 충전하지 못한 그 무엇은 모델로 원통형 무대에 선 마담이 제격이었다.
끽끽, 미세한 촉수마저 흔들어놓는 웅장하고 정교하면서 무성하게 들어찬 뜨거움의 블랙홀이 여자였다. 표현봉조각가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하나의 세상이 중년의 복숭아나무처럼 활짝 만개하여 도화를 피었으니 어찌 지나치겠는가. 마담의 굴곡진 허리선은 사무치게 새겨져 이웃집 여자를 탐닉하는데 주저함 없게 만들고 있었다. 입술과 귓밥과 목선과 가슴골을 혀로 핥았다. 지금이라도 거부의사가 감지된다면 무력행사는 과감히 거둘 것이다.
“서화인이에요.”
자신의 알몸을 보기위해 옷깃을 헤치는 남자에게 눈을 감고 이웃집 여자는 이름을 말해주었다. 이름이 참 예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득한 살 냄새가 입안에 고여 들어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두근거림이 쉽게 전달된 손짓으로 이웃집 여자의 옷을 하나 둘 벗겼다. 몸을 들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옷 벗기기를 도와주었다. ‘서화인이라고 했지.’ 몇 번 되새김질하면서 이번에는 내 옷을 벗기는 서화인을 도와주었다.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소원을 빌던 그 간절함이 빛을 발하는 엄숙한 시간 속으로 내가 풍덩 뛰어들었다. 오직 맨살이다. 맨살의 부딪힘이다.
서화인은 조련사였고 가이드였고 멘토였다. 공략할 곳도 정복할 곳도 내 자존감이 살아있는 선에서 기꺼이 동행하여 깃발을 펄럭이게 해주었다. 나는 몰아치는 욕정을 아낌없이 쏟아내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목을 조르던 정체를 어렴풋하게 욕정이라는 채널에 맞춰두자, 풀지 못했던 퍼즐이 실마리를 잡은 듯 개운했다. 서화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온기가 그랬고 체취가 그랬고 느낌이 그랬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남자는 우우우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