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품속에서 남편은 단검을 빼들었다. 그나마 은둔형 외톨이에 비폭력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외부로 받는 충격요인의 강도가 세지 않은 이유에서였다. 고작해야 주먹질과 발길질 정도로 참고 견디면 어느 정도의 선에서 멈춰주었다. 만일 맞서 싸운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두려움이 컸다. 어떻게 전개되어 내 주먹에 나가떨어진 상대방이 식물인간 내지는 사망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차라리 맞는 편이 되어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자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한번은 일행들이 빠져나간 펀치머신 앞에서 스스로 주먹을 시험해본 적이 있었다. 항상 남들 눈이 있을 때는 뒷전에서 딴전을 피우며 조금이라도 전투적인 성향을 극도로 숨겨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 마침내 펀치머신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뒷전에서 분석한 데이터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타격의 세기와 정확도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것을 곱씹으며, 다리의 각도와 어깨와 주먹을 일직선상에 놓았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타격과 강력한 힘을 가진 타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숨을 몰아쉬고 곧 숨을 멈춘 뒤 펀치를 날렸다. 펀치머신의 짜릿한 진동과 최고점수에 해당하는 999점과 팡파르가 울렸을 때 스스로를 살인병기 대열에 올라놓았다. 어쩌면 흉기를 든 남편을 방어하여, 한번쯤 주먹으로 남편 공격을 차단하는데 요긴하게 쓰일지 모른다. 성큼 거리를 좁힌 남편의 탁한 목소리가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내 마누라와 붙어먹으니까 좋든? 내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도 물론 들었겠지? 그만큼 책임과 대가도 각오하고 저질렀겠지? 간이 배밖에 나온 새끼야!” 대답대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기세를 몰아 남편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상처를 입힌다는 공격이 아니라 겁을 주기위한 공격 같았다. 놀이터에서 큰길도로로 달아난다는 계산아래 눈으로 거리를 가늠했다. 이백 미 터는 족히 되어보였다. 그대로 달아난다면 금방 잡힐 것이다. 한주먹으로 치명타를 먹이고 달아난다면 승산이 보인다. 도로로 나가면 틀림없이 도와줄 누군가는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이 칼이 날아들었다. 금속성 흉기에서 느낄 수 있는 살기어린 바람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다.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지 못한다면 칼끝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겁을 먹고 잔뜩 웅크리고 있을 거라는 방심한 틈을 타서 남편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생각하지 못한 공격과 주먹의 강도에 적잖이 놀란 남편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길도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남편이 곧 따라왔다. 깊은 어둠사이에서 달아나는 발자국과 쫒아오는 발자국소리가 가득했다. 머리까지 흔들리는 현기증으로 간신히 도로위에 올라섰다. 평상시 많이 보이던 차량들도, 사람들도 추위 탓인지 보이지 않았다.  달리기에 인색하던 몸은 급속도로 지쳐갔고 이럴 바엔 맞서 싸우다가 칼에 맞는 쪽을 택한 몸을 돌려세웠다. 남편은 날렵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등 뒤로 비틀대는 차량불빛이 보였다. 한눈에도 음주운전 차량처럼 중앙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멈추자 남편도 따라 멈추었지만 음주운전 차량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남편이 튕겨져 나가 도로에 곤두박질쳤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에 몸을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도로가로 몸을 은닉했다. 모아비 4륜구동 차에서 운전자와 동승자가 내려 주변을 살핀 뒤 남편을 뒷좌석에 태운 채 어둠속으로 비틀대며 사라졌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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