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23)누구에게나 자신의 바다를 품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서화인의 바다는 파도소리가 자욱한 물안개로 덮여있었다. 선박이 끊긴 부두에는 오래된 방파제가 건들거렸고 사연 많은 해풍이 넘나들었다. 먼 바다를 실어 나르는 물결이 잦으면 갈매기가 떼로 날거나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겼다. 비린내는 푸른 멀미처럼 찾아오고 바닷가에서 밀려난 폐선들이 소리 내어 흔들거렸다. 등대의 불빛은 한 움큼씩 던져지고 모난 성질을 다독여 몽돌을 따글따글 굴리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는 짠물 속을 지나가는 어선들의 살점처럼 느껴졌다. 팔베개를 한 서화인은 꿈결처럼 다시 바다를 읊조리고 있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로 한 시절을 옮겨놓으면, 몸서리치는 슬픈 사연이 들어섰다. 곧 돌아온다는 약속을 끝으로 귀먹은 배들만 드나들고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태풍은 아버지를 삼켰다. 남겨진다는 것은 가슴속 오래 멈추지 않을 울렁증처럼 몹시도 두렵고 애타는 눈물을 번식시켰다. 훗날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말라깽이 열세 살에서 철든 애늙은이로 옮겨가버렸다. 소식 끊겼던 먼 친척집을 옮겨 다니며 천덕꾸러기 대접도 과분했는지, 겁탈까지 당하면서 늘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만 가슴속에 쟁여두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조차하기 싫었던 그런 날에 룸살롱에서 막장인생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의지하고 싶은 몸과 마음 따라 혼인신고를 했다. 당연히 동거로 남들처럼 안정을 찾고 싶었다. 연애할 때 그렇게 잘해주던 남편은 금방 본색을 드러내고 손찌검에 명령조로 변해갔다. 서화인은 그런 기구한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운명의 사슬에서 달아나려고 하면 더욱 죄여드는 더 독한 어둠에 익숙해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길들여지기를 소원했다. 언제든지 달아나고 싶은 마음은 결코 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찾아왔다. 운명적으로 만난 나를 통해서 감히 행복을 얘기하고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언제 두 동강 날지 모르지만 으스러지도록 내 품에서 지키고 싶다고 했다.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간간히 고여 드는 서화인의 눈물샘을 혀로 핥아주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남편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며 온 몸은 떨고 있었다. 떨림이란 또 다른 상처 같은 것이어서, 그 상처가 굳기 전에 목격한 남편의 죽음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듣고 난 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서화인의 반응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비겁하고 나약하고 거짓말쟁이로 인식될 요소를 다분히 지닌 사건의 전말을 다시 묻어두는 쪽으로 내심 결정해야만 했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남녀의 체취는 이럴까. 계속 코를 박고 싶은 알몸뚱이가 그랬다. 호흡과 시선과 체온과 생각이 한 선상에서 전송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았다. 서화인의 손끝이 귀에서 가슴으로 옮겨갔고 마침내 남자를 건드렸을 때 안에서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입김을 던져주고 있었다. 고스란히 받아내는 서화인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처음도 끝도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우람한 스스로의 몸을 저마다 몸을 접거나 구겨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채워주면, 발그스름하게 변색을 했다. 비단 카멜레온만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도 충분히 그렇다. 짧은 순간에 반짝 지나가는 것을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었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21:39:31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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