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27)서화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몇 번 참는 표정에서 고민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쉽게 끼어들기에는 무거웠고 진지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파에 앉았다. 바닥에 앉은 서화인의 시간은, 이제껏 접하지 못한 무게로 다가왔다. 한 주내내 지친 몸을 소파 팔걸이에 의지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장비점검을 마친 5분 대기조처럼 긴장상태에 있다고 믿었다. 그만큼 서화인이 내게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다. “뺑소니차량 운전자의 번호를 따왔다고 했는데, 방안은 있어요?”침묵을 깨준 서화인이 고맙다고 느껴졌다. 뭔가 논의하는 과정에서 방법에 빨리 접근하여, 어깨에 올려져있는 무게를 줄이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무 증거도 없이 경찰서에 신고는, 가해자에게 도주로를 제공하는 꼴이 될 승산이 크다고 믿었다. “시체를 운반한 동승자가 있다고 했죠?” “네.”“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발신번호 제한으로 먼저 전화를 겁니다. 물론 음성변조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가능해요. 얼마나 운전자와 동승자가 우정이 두터운지 모르지만 이간질을 한번 시켜보죠. 그러면 묻었는지 버렸는지 불게 되어 있어요. 먼저 약점을 잡고 경찰서에 신고나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대책은 그때 세우기로 하죠. 거머리처럼 달라붙던 남편을 떼 준 건 고맙지만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겠죠.”뭔가 답답한 심정에 최소한, 서화인은 물꼬를 터주었다. 괜찮을 것도 같았다. “당신이 할래요? 제가 할까요? 아니 이런 것일수록 여자목소리가 주는 압박감은 남자목소리보다 효과가 크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구나 AI처럼 흔들림 없는 목소리 톤이 받쳐준다면 저쪽에서 쉽게 항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화인 말에 동조한다며, 23#을 누르고 운전자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것을 보면서 서화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때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을 들은 서화인은 어디에서 첫마디를 시작해야하는지 계산에 넣은 표정으로, 상대방이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 낯선 전화도 받기 어려운 사회상을 반영하듯 하물며 발신번호 제한 번호는 더더욱 망설여질 것이다. 이번에는 서화인이 발신번호제한을 걸어 눌렀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눌렀다. 저쪽에서 받았다. 황급히 서화인에게 건네주었다. “놀이터를 지난 큰길에서 뺑소니를 하셨죠?”저쪽에서 숨소리가 거칠어진다고 느껴졌다.“이런 사실을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았습니다. 누가 제보한지, 제보자는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어렵게 저쪽에서 말문을 떼기 시작했다. “경찰서에 넘기지 않고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돈 때문인가요?”“이틀 뒤에 다시 전화를 할 겁니다. 이미 모든 정황증거와 증인도 확보되어있으니 꼭 전화를 받아야만 젊은 날에 낙오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남편의 행방을 확실히 알고 싶었던 서화인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돈 때문이라는 그 한마디가 쉽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뭔가 찝찝하게 다가왔다. 정말 마음속에는 돈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전화를 하여 추궁할 수 있었는데도 서화인의 결정에 따른 것은, 은밀히 돈 욕심의 속셈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기방어일지 모른다. 서화인도 천장을 올려보며 썩은 미소를 혼자 짓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