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30)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줄기가 저토록 기운차게 수직 하강하는 모습에서 두려움은 더한층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워낙 말라있었는지, 세를 넓히지 못하고 좁은 폭으로 흘렀다. 곧 빗줄기에 의해 강물은 범람한다고 생각되어졌다. 뺑소니 운전자가 말뚝처럼 선채로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거역할 수 없는 압박감을 고스란히 느꼈다. 다리기둥 뒤에 뺑소니 동승자로 보이는 남자와 서화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다리위에서 부딪히는 빗소리만큼, 소름 돋는 미소를 짓고 있는 운전자가 다가와 서화인 쪽으로 손짓했다. 쉽게 해결되고, 빠져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내 앞에 펼쳐져있는 정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의도라 읽혀졌다. 손짓에 따라 동승자가 서화인의 목덜미를 생각보다 크게 낚아챘다. 공중에 붕 떴지만 한쪽 발은 고정된 듯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서화인의 한 쪽 발목에 차고 있는 쇠사슬을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격분하여 일어서려는데 어느새 손에 들린 멍키스패너로 가슴팍을 찌르며 운전수는, 나를 다시 주저 앉혔다. 칼보다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멍키스패너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정황이 아귀가 맞게 뺑소니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혼자 뺑소니를 만나 돈을 요구한 서화인이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굵은 빗줄기에, 텐트 족이 없는 다리 밑에, 족쇄와 멍키스패너까지 쉽게 넘어갈 만만한 구석은 없었다. 여차하면 죽이고 묻어버리는 살인청부업자가 아닐까. 그날의 목격자가 되어 한 밑천 잡으려는 생각이 번지수를 찾아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안대도 가리고 재갈도 물려진 서화인이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운전자가 힘이 실리도록 멍키로 어깨를 내리쳤다. 짓이겨지는 통증이었다. “지금 설마 장난으로 보이진 않겠지? 모범시민처럼 살아온 우리를 건드린 죗값은 받아야할 걸.”뺑소니 입에서 모범시민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정말 살인청부업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긴 모범시민이면 어떻고 살인청부업자면 어떤가. 족쇄에, 안대에, 재갈에, 선 넘은 폭력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면, 이 사실을 영원히 감추기 위해서라도 살인이 불가피할 것이다. 멍키스패너 하나에 이미 대항할 힘이 바닥난 것은 믿기지 않았다. 빗발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빈틈을 엿보고 있던 내가 벌떡 일어섰다. 서화인 쪽으로 가려했는지 강변으로 내달리려했는지 모호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싶지 않는 반격의 몸짓 같았다. 곧 두개골이 갈라지는 충격이 머리에 가해졌다. 멍키스패너가 가진 최대한의 공격성이 내 머리에 얹혀졌다. 요란스럽지 않게 쩍 소리가 목덜미를 휘감아 돌았다. 일순 경직된 몸으로 시멘트바닥에 내리치듯 쓰러졌다. 내일 표현봉 조각가와 한강에 들어설 조형물 출장 계획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의식이 점점 사라졌고 눈꺼풀이 닫힌 것도 같았다. 애써 눈이 떠진 시간은 오전 열시였다. 익숙한 풍경에 익숙한 체취였다. 스마트폰 알람이 깨워주는 오전 열시는 은둔형 외톨이 기상시간이었다. 다시 6개월 이상 고립된 청년 54만 8천명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원룸에 옮겨졌는지 기억은 없지만, 멍키스패너에 대한 기억은 또렷했다. 하지만 확인하거나 수습하거나 응징할 의욕은 바닥나 있었다. 뺑소니도 서화인도 궁금해지지 않았다. 무음으로 맞혀둔 폰에는 표현봉의 전화만 무수히 찍혀있었다. 천천히 차단키를 표현봉 번호에 눌렀다. 세상과 단절되면서 고립되는 매운 울음소리가 창가 쪽에서 부지런하게 시작되었다. 제자리로 돌려졌다는 것을 내 몸이 먼저 알아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