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1)그제야 무심히 넘긴 5월 달력을 찢었다. 바빠서 인지하지 못한 저번 달이라 생각하기엔, 그다지 달력 건너뛰기에 대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이 그날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일상 속에서 달력 찢기를 놓친 것은 나이 탓으로 몰아세웠다. 무슨 연유인지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말간 6월 달력을 마주했을 때 벌써 6월도 반 토막 나있었다. 성큼성큼 앞으로 내달리는 세월의 보폭을 맞추기에는, 어느 구석이 헐거워졌거나 녹이 슨 그대로 뻑뻑함이 감지되었다.기껏 달력 한 장 넘긴 것 때문에 무력감과 자책감을 동시에 느끼기에는 왠지 억울했다. 뱃속에서부터 똬리를 틀고 있던 맹수의 포효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힘줄이 툭 불거지고 붉게 물든 표정이 거울 속에서 뚫고 나올 듯 용틀임하고 있었다. 한 번도 자신만만하게 거침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정년퇴직 후 취미생활에 여유를 찾으며 인생을 즐기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더 쫒기며 살아온 것 같았다. 어떻게 세상은 정년퇴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자리는 재빠르게 메꾸어진 채 생생하게 잘 돌아가고 있을까.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적어도 지구라는 혹성에선 내가 없으면 감당하지 못할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니 계약직이라도 복귀하라는 목소리를 어제도 오늘도 기다렸다. 진지한 쪽으로 기다림은 다듬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절만 뻔질나게 바뀌고 절대 호명하지 못할 나이 쪽으로만 해를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 한 번의 포효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차를 몰았다. 딱히 갈 곳은 없지만 우왕좌왕 하고 싶진 않았다. 시동을 걸때부터 정해진 목적지처럼 우로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로지 생태공원과 호수가 만개한 유월을 살고 있었다. 주차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앞면유리를 통해 펼쳐져있는 풍경과 접속을 시도했다. 마치 댕기머리 끝에 있는 교감으로 촉수를 자극하는 아바타처럼, 차안과 우로지를 연결한 앞면유리의 매개로 한편이 만들어졌다. 지극히 당연한 이음새였다. 처음부터 방만하게 이끌어가는 것보다 좀 더 짜임새 있는 윤곽이 필요했다. 이렇게 먼저 접속된다면 헐겁거나 녹이 슨 뻑뻑함도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릴 것이다. 저런 풍경을 한꺼번에 주워 담을 여백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차안에서도 눈부시게 푸른 우로지가 사방팔방으로 샘솟고 있었다.눈을 가늘게 뜨거나 망원경처럼 손가락을 오므려가며 내 나이에 맞는 풍경을 담아내거나 소화시켰다. 그랬구나. 늘 자연은 그곳에서 계절에 맞게 옷을 갈아입고, 옷을 벗어던지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차문을 열고 나왔다. 헹가래치듯 유월 품속의 살 냄새가 다투어 코를 자극했다. 그것만으로 흥분되었다. 실로 놀라운 세상에 대한 빗장풀기처럼 나는 우로지 앞에서 먹먹해졌다. 한때 체크남방 안에서 키우던 근육들이 새삼 형체를 잡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맹수의 포효가 통할까. 가급적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인적이 드문 구석진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결 모양이 그려진 콘크리트 의자에 여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고 목청껏 소리쳤다. 속이 후련할 정도로 개운했지만 여자가 신경이 쓰였다. 놀란 얼굴에 목례로 사과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지만 일단은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돌아서려는데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BTS 진이 오늘 전역했어요. 방문을 자제한다는 당부 때문에 너무 슬퍼요. 혹시 아저씨도 그것 때문에 소리쳤나요?”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23:11:03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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