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3)수피아는 누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처럼 주위를 한번 살폈다. 자연스럽게 함께 주위를 살피는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수피아가 미소를 캐치하고 한마디하고 싶어 했다. 허락한 듯 눈을 껌뻑 거려주었다. 튼튼하게 밀봉한 마개를 따듯 수피아는 어둠속에서 눈을 반짝거렸다. 짜릿한 기운이 내게 번져왔다. 가로등 불빛을 넘지 않는 선에서 어둠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절대 이해되지 않으면서 믿지도 않을 걸, 알아요. 허지만 전 소설가도 이야기꾼도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마음속에 새겨주세요. 황당하다거나 기상천외하거나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삶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거짓이나 불신으로 단정해버리면, 제가 들려주는 경험담은 중도에서 끝날 수가 있어요. 혹시 그럴 의향이 있으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헤어져야겠지요. 아저씨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인가요?”호기심에 찬 고개를 아래위로 힘 있게 끄덕거려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노령연금을 받을 암울한 한사람이, 무료한 시간을 함께 보내줄 제의를 받는다면 쉽지 않는 보너스가 분명할 것이다. 그것이 마흔 살이나 적으면서 당돌하고 똘망똘망한 아가씨라면 흔쾌히 승낙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전개되더라도 지루한 표정 없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수피아는 우유빛깔에 예쁘기까지 했다. 멀리서 우로지 호수를 뛰어다니는지, 날아다니는지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수피아는 그 소리에 귀를 열어 놓은 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산을 깎아 지은 단독주택에 살았어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시고, 칠년을 더 그 집에서 혼자 살았어요. 부모님이 계실 때는 듣지 못한 소리들이 항상 집안을 맴돌았어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조약돌 부딪히는 소리, 종소리, 낙엽 밟는 소리들이 뒤섞여 집안 곳곳에서 설쳐대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머리끝에서 주저앉히는 힘이 더욱 강력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소리의 발원지를 찾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야만 풀리지 않는 해답을 찾을 것 같았어요. 무수한 소리와 맞설 수 있는 전사가 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어요.”깡마른 여자는 집안부터 뒤졌다. 분명 자신이 모르는 공간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어디에선가 절묘하게 뚫린 공기구멍에서 새여 들어오는 공기와, 빈공간이 마주쳐 현란한 소리들을 생산하는 기류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보통 집짓기에는 다락방이 설계하는 과정에서 쉽게 한자리를 채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는가. 깡마른 여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락방이 들어설 만한 벽을 먼저 훑기 시작했다. 괜한 벽을 두드려보고, 빈공간이라면 낼만한 소리에 청각을 세웠다. 그렇게 집안을 한 바퀴 돌았지만 요지부동자세로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번에는 어딘가 있을 지하실을 찾아 나섰다. 다락방의 범위보다는 좁다고 생각했는데 마루 바닥이며 벽 사이를 꼼꼼하게 살피는 과정에서 더 광범위하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벽과 바닥을 쉼 없이 두드려보았다. 약간이라도 텅 빈, 수상한 소리가 채집되는 그곳을 공략하면 무언가 가닥은 잡힐 것이다. 어깨너머로 본 할머니의 방망이질을 연상하며 이곳저곳을 두드릴 때 고르지 못한 소리 하나가 올라왔다. 과감하게 벽지를 뜯어내자 상상도 못한 지하실이 드러났다. 천천히 녹이 슨 지하실 문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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