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잔뜩 먼지 먹은 계단이 문이 열리자 드러났다. 깡마른 여자는 두려웠다. 이명처럼 들리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 진심으로 달려들어 찾은 지하실이었지만, 막상 들어가서 확인하려니까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엷은 빛이 새여 들어와 간신히 식별이 되었지만 지하실을 타고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는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 집이 들려주는 내력은 알고 싶었다.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 만방에 선포하고 싶었다. 계단은 의외로 견고했다. 발 디딤에 따른 탄력이 무릎으로 전달되었다. 혹시 수 십 년간 버려져 있었던 게 아니라 한 번씩 견고함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발걸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기울고 허물어지는 세월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한 인기척이 절실했다면, 어느 날 문득 자신처럼 집안을 뒤지는 누군가는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빈집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 집의 몸부림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주인이 없어도 상관없이 마을 불량배들의 소행쯤으로 일단락 짓고 싶었다. 왜냐하면 집은 반드시 인기척으로 존재하는 이유이리라. 깡마른 여자의 걸음은 어느 귀퉁이에서 멈췄다. 돌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이전에 지하실로 찾아든 몇 사람의 영역표시 같았다. 아니 길을 찾는 표시판으로 쌓아놓은 돌탑일지 모른다. 앞선 사람들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뿐, 읽어내지 못하는 데서 탐험의 매력은 시작되기 마련이다. 뒷걸음을 타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지금 처한 의도를 나름대로 해석할 뿐, 평가는 그들의 몫이다. 돌탑에 올려 질만한 작은 돌멩이를 주워 균형을 맞혔다. 휘청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이내 반듯해졌다. 자신의 행운을 불러오기 위한 수단과 의식으로 돌이 얹혀졌다. 어쩌면 기존의 경로를 교란하는 행위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깡마른 여자는 좌우를 살폈다. 그토록 요란스럽게 들리던 잡동사니 소리들이 한 묶음으로 우렁우렁 몰려다니고 있었다. 먼 곳도 아닌 가까이에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반짝 샘솟았다. 다시 긴장하고 있는 어깨를 펴고 앞으로 나갔다. 생각지도 않은 모래알갱이들이 발에 밟혔다. 그 느낌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얼마나 왔을까. 지하실은 길고도 멀었다. 그러고 보니 끝이 닿지 않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미로도 아니고 일직선으로 나있는 통로에서 아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어느 지점은 무수한 자기장으로 들썩 거렸다. 심한 혼란이 오고 말았다.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요동쳤다. 자석의 양쪽 극에서 가장 강해서 이러한 자기력을 당기는 공간을 자기장이라면, 자신은 그 안에 갇힌 파리 목숨처럼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고 느껴졌다.바닥이 지하실 천장이 되고 다시 천장이 바닥이 되는 자기장 안에 갇혀 깡마른 여자는 목이 잠기고 호흡조차 거칠어졌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가도 아무도 찾지 않거나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야 소름끼치고 서러웠다. 혼자 남겨져 살아온 세월이 부질없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이 날 세월을 지켜내려고 발버둥 쳤던 시간들을 꿰어보려고 하나하나 열거해 보았지만 속절없이 눈물이 고여 왔다. 다행히 자기장은 오랫동안 지속되진 않았다. 어느 시점에 약해진 힘을 틈타 온몸으로 빠져나왔다. 마치 팽팽한 고무줄 탄력이 느슨해진 그 시점이었다. 휘어지고 구부려진 허리선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을 필요성에 따라 깡마른 여자는 뒤꿈치를 들고 케겔운동 자세를 취했다. 수축 시에는 숨을 들이 마시고 이완 시에는 숨을 천천히 내쉬며, 빠른 수축과 느린 수축을 번갈아 효과를 보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기장으로 망가진 몸을 깨우는데 딱히 떠오르는 최선책은 없지만 케겔운동으로 접근하려는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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