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43)웅장하고 짜임새 있는 행렬을 보았다. 단단하면서 간절한 질서를 보았다. 종으로 횡으로 이미 결속된 인파들의 조화로운 울림을 보았다. 마치 물수제비를 수차례 먹은 돌멩이가 강 건너편에 당도하여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어리둥절함처럼, 달리 표현이 되지 않았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종착지라서 내리기를 종용하는 기사의 우렁찬 목소리를 따라 발을 내디딘 서울의 공기는 한마디로 텁텁했다. 답답한 것 이상으로 텁텁한 공기를 가르며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꿈속에서도 서울을 노래한 이 땅 지하철 앞에서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갈 곳도 없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전진을 기대할 수 없었다. 깡마른 여자는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처럼 궁한 형색으로, 똘똘하지 못한 눈빛인 채로 엉덩이를 뭉개고 잡 담을 늘어놓는 몇이 보였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서울의 생성과 변화를 모색하는 데에 두드러진 일조를 하고 있는 활기찬 기운이 가감 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있었고 내일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곧 서울시민들이었다. 너무나 대조적인 극과 극에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금방이라도 푸른 물결 속에 합류해도 될 것 같지만 반드시 낙오하게 된다. 이탈하거나 도태하게 되어있다. 기세등등한 서울시민들에게 텃세에 대한 자릿세를 납부하지 못한 대가이기도 하였다. 얼마인지 어떻게 납부하는지 알지 못한다. 부딪히면서 그들의 서슬 퍼런 자존감을 배울 수밖에는 달리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장미덤불속 성이 서울인데 오죽하랴. 장시간 걸린 버스여행의 여독 속에서 몰려오는 졸음은, 무장해제처럼 지하철 입구에서 까딱까딱 졸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깡마른 여자의 몸을 더듬었다. 눈을 뜨자 벙거지를 눌러 쓴 남자가 먼저 보였다. 소리치며 본능적으로 몸을 감쌌다. 씨익 웃는 벙거지의 금이빨이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소리 때문이지 약간 동요되던 인파들은 다시 각자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고 벙거지는 순간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관망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스스로 도움의 손길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인파들을 벗어나면 더욱 위험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다짐했다.가까운 경찰서도 괜찮고, 가까운 모텔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인파들 속에 섞여 주변건물을 탐색하였다.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불빛은 더욱 불안한 혼돈 속으로 내몰고 있었다. 처음 에 뒤따라오는 것 같던 벙거지는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지만 여전히 갈 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서울시민들과 섞여 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왔다. 그들이 알아챘는지 알 수 없지만, 알아채고 대열에 동참해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알아채고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기분 좋은 행렬이었고 기분 좋은 서울 나들이였다.  벙거지에게 고마워하고 싶었다. 모텔을 찾아, 침대에서 밀린 잠을 자듯 자신의 코고는 소리에 깰 정도의 깊은 잠을 두 다리를 뻗고 질 좋은 휴식을 취했다. 얼마를 그렇게 잤는지 모르지만 모텔주인의 방문을 받았다. “혼자 온 아가씨들은 잘못 선택으로 세상을 등지는 일이 종종 있어서, 혹시나 하고.”“전 그러지 않아요.”“며칠을 더 묵을 예정인가요?”“밀린 잠이 해결되면 떠날 예정이에요.”“그러면 오 일 방세 한꺼번에 내면 하루는 써비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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