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태권도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화려한 발차기나 품새를 배우리라는 기대와 달리, 관장은 근 한달 가까이를 기마자세만 반복시켰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삐질 쏟아져도 자세를 낮추고 버티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서예를 잠시 배울 적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붓을 쥐고 화선지에 멋지게 일필휘지 하고 싶었지만, 원장 선생님은 여러날을 오래된 신문지 위에 아래로, 옆으로 선긋기와 동그라미를 반듯하게 그리는 연습만 시켰습니다. 그때는 지루하고 답답해 금방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그 이후의 실력을 떠받치는 뿌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운동이든 서예든, 혹은 학문이나 예능이든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기본기가 있습니다. 기본기란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때로는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을 만큼 단순합니다. 그러나 기본기 없이 쌓아 올린 실력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무너집니다. 기마자세 없이 강한 발차기는 나올 수 없고, 곧은 획을 긋지 못하는 손으로는 결코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없듯 말입니다. 기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지탱하는 뼈대와 같습니다.이러한 이치는 개인의 기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도 기본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상식입니다. 상식은 법전에 낱낱이 적혀 있지 않지만, 공동체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며 합의해 온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일, 거짓을 말하지 않는 일 등등. 이런 것들은 특별한 지식이나 재능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순한 규범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사회라는 구조물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킵니다.문제는 우리가 종종 상식을 하찮게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화려한 성과와 눈에 띄는 결과에는 열광하면서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 태도와 원칙에는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기마자세를 건너뛰고 발차기를 배우려는 조급함, 곧은 선 긋기를 생략하고 멋진 글씨를 쓰려는 욕심은 결국 처절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도덕과 예의, 정직과 책임감을 건너뛴 채 성공만을 좇는 사회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속으로는 위태롭기만 합니다. 기본이 무너진 자리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더욱 눈여겨볼 점은, 기본기를 갖춘 사람일수록 오히려 응용에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기마자세로 다져진 하체는 어떤 발차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제공하고, 곧은 획을 그을 줄 아는 손은 어떤 서체로도 유연하게 나아갑니다. 상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상식과 원칙을 체화한 사람은 낯선 상황에서도 판단의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 기본이 결여된 채 요령만 익힌 사람은 작은 변수에도 쉽게 흔들리고 맙니다. 결국 기본기는 속도를 늦추는 걸림돌이 아니라, 먼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게 하는 저력인 셈입니다.우리 사회가 겪는 여러 갈등과 혼란의 근저에는, 어쩌면 이 기본과 상식에 대한 경시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름길을 찾으려는 조급함,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 원칙보다 편의를 앞세우는 태도가 쌓이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태권도의 기마자세와 서예의 곧은 획이 그렇듯, 상식은 단조롭고 더뎌 보이지만 결국 모든 발전과 성숙의 출발점입니다.이제라도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화려한 결과에 앞서 그것을 지탱할 기본을 충분히 갖추었는가. 개인의 성장이든 사회의 진보든, 그 답은 결국 가장 단순하고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반복해 온 기본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그 위에 세워지는 모든 것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상식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확실한 기본기임을 잊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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