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연못 주변을 산책하시다가 문득 아난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난다야, 큰 바다에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이 거북이는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았는데 그때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 판자를 만나면 잠시 거기에 목을 넣고 쉰다. 그러나 판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때 눈먼 거북이가 과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다는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했다. “그래도 눈먼 거북이는 넓은 바다를 떠다니다 보면 서로 어긋나더라도 혹시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이 육도윤회의 과정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저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나기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저 중생들은 선(善)을 행하지 않고 서로서로 죽이거나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해쳐서 한량없는 악업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내가 가르친 ‘사성제’를 부지런히 닦으라. 만약 아직 알지 못하였다면 불꽃 같은 치열함으로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잡아함 15권 406경 맹구경(盲龜經)》 ‘人身難得(인신난득) 佛法難逢(불법난봉)이라.’ 사람의 몸 받기가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씩 머리를 만날 때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기보다 어려운데 마침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이 말씀은 게으름을 피우는 수행자에게 쓰는 경책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사람 몸 받기 어렵다.’라는 이 구절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사람 구실 해야지’ 다짐하며 삽니다. 김남준본관은 김해이고 청송에 살았다. 조상환을 좇아 산남의진으로 들어와 자못 용감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일이 실패한 뒤 만주로 건너갔다.〈원문〉金南俊은 金海人이라 居靑松하다 從曺相煥入陣하야 頗有勇名이런니 事敗後渡滿洲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3p>金萬俊 義士 略歷(김만준의사 약력)金萬俊(김만준)은 관향은 金海(김해)라 靑松出身(청송출신)으로서 입진하여 용감하더니 후에 滿洲(만주)로 亡命(망명)하다 <山南義陣遺史521p>엄순백본관은 영월이며 청송에 살았다. 조상환을 따라 산남의진에 들어왔고 일이 실패한 뒤 충청도로 몸을 피하였다.〈원문〉嚴淳伯은 寧越人이라 居靑松하야 從曺相煥入陣하고 事敗後에 避身於湖中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3p>嚴淳伯 義士 略歷(엄순백의사 약력)嚴淳伯(엄순백)은 관향은 寧越(영월)이오 靑松出身(청송출신)이라 의진이 전말되고 湖中(호중)에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521p>조창규자는 문칠이고 본관은 함안이며 1870년 경오에 태어났다. 1907년 정미의 고와실 전투에서 적의 실탄을 맞고 왼쪽 다리에 중상을 입은 데다 출혈이 심하여 숨어서 치료를 받았다. 그 몇 개월 만에 일본군 30여 명과 조선인 순검(巡檢) 8명이 갑자기 쳐들어오기에 가족들이 겨우 도망시켜 위험을 피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막냇동생 경규를 붙잡고 집 안에 있던 전 재산을 약탈하고 돌아가면서 동생 경규를 죽이고자 하자 마을 안덕면에 사는 사람들이 창규의 무죄를 증명하는 문서를 써준 덕에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왔다.〈원문〉趙昶奎는 字는 文七이요 咸安人이라 庚午生이라 丁未之年高臥室戰에 中敵彈하야 左足重傷而兼吐血症하야 隱臥治療者有月餘矣라 倭三十餘名과 朝鮮巡檢八名이 乘時突入이어늘 家族이 僅僅逃避하고 惟季弟炅奎被執而掠奪全家産以歸하야 欲殺之어늘 面民이 證其無罪而以書質之하고 得歸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3p>趙昶奎 義士 略歷(조창규의사 약력)趙昶奎(조창규)는 字(자)는 文七(문칠)이요 관향은 咸安(함안)이라 丁未年(정미년)에 입진하였고 高臥室戰(고와실전)에 左足(좌족)에 重傷(중상)을 입고 吐血症(토혈증)으로 治療中(치료중)에 倭兵(왜병) 三十餘名(삼십여명)과 巡査(순사) 八名(팔명)이 突入(돌입)하였다 공과 그의 가족들은 요행히 도피하고 季弟(계제)인 炅奎(경규)가 피집되어 家産(가산)까지 약탈을 당하고 고초를 받는데 面民(면민)들이 무죄하다고 진정서를 제출하고 석방되다  <山南義陣遺史521p>권상문자는 극서고 본관은 안동이다. 이세기를 좇아 산남의진으로 들어와 여러 지역에 출몰하다가 훗날 적에게 붙잡혀 감옥살이를 수년간 하였다. 출옥한 뒤에는 바닷가 지역을 떠돌면서 그렇게 늙어 갔다.〈원문〉權祥文은 字克瑞요 安東人이라 從李世紀入陣하야 出沒各地라가 後被執하야 繫獄十餘年而出하야 流於沿海等地而終老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3p>權祥文 義士 略歷(권상문의사 약력)權祥文(권상문)은 字(자)는 克瑞(극서)요 관향은 安東(안동)이요 永川冠坊出身(영천관방출신)이라 입진하여 활약하다가 피집되어 체형을 받고 출옥하여 沿海(연해) 등지로 유리하다 <山南義陣遺史521~5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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