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32)손수 밖으로 밀어 올려서 고정시킨 들창으로 합하 추명은 물끄러미 시선을 가져갔다. 웬일인지 부쩍 고독하다는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저 눈송이 탓일까. 목화꽃을 닮았다고 넌지시 속마음을 내비췄다. 여름을 대변하는 목화꽃이 으뜸이라면, 겨울 눈송이는 순수함으로 다가가는 통로 같다고 여겨졌다. 그러면서 세상의 온갖 악행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눈송이가 쌓인다고 들었다. 첫째 춘명은 당연히 보위를 물려 받는다는 야심이 너무 강하여, 남자다움의 상징인 사냥을 즐겼다. 어느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광폭함을 생혈(生血)에서 찾으려 했다. 노루든지 멧돼지든지, 심지어 범의 생혈을 벌컥벌컥 마시는 호탕함이 자신의 전부라 여긴 피 끓는 청춘에, 아랫목 신세를 덜컥 지게 되었다. 몸 구석구석에 기생충들이 자리 잡아, 한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파먹기 시작했다. 정신 줄도 놓은 듯 갖가지 산짐승들의 울음을 토해내었고, 날짐승들의 울음소리까지 섞여 나왔다. 아마 그것들의 생혈도 마다하지 않고 마신 것 같았다. 시녀(侍女)들은, 귀신은 뭐하는지 빨리 잡아가라고 틈만 나면 정성껏 빌기 시작했다. 실상 명줄로 근근이 연명하는 춘명은 존재자체가 없다고 봐야 옳았다. 둘째 하명은 일찍이 색(色)에 눈을 떴다. 색깔과 여색이 동시에 여물지 않는 소년기에 혼란스럽게 다가와. 붓과 화첩을 어깨에 메고 기방(妓房)을 출입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의 삭신은 청년기로 접어들었을 즈음 이미 눈에 띄게 병약했지만 합하의 유고(有故)시 관례에 의해 보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추명의 사생활을 시중하던 여관(女官) 주용이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측간에서 살아나온 무용담을 여기저기 흘리면서, 똥독도 어쩌지 못하는 하늘의 뜻이 계략이었다. 그러려면 자연스럽게 하명의 사치와 방탕을 인정하되, 보위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공표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방방곡곡 북을 치고 마을 백성이 어느 정도 모였다고 생각이 들 때 쯤, 술에 쩐 목소리로 하명은 외쳤다. “이 나라의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은 내 몫이 아닙니다. 동생 추명에게 넘겨주겠습니다. 마을백성들을 누구보다 잘 지켜줄 것이며 풍년의 시기에는 곳간에 저장하여 곡식으로 배부르게 할 것이고, 흉년의 시기에는 팔을 걷어붙여 먹거리를 찾아 나설 대책을 강구할 비상한 머리로 타고 났습니다. 나는 이 나라의 세자로 비록 보위에 오르지 못하지만, 더 능력 있는 동생에게 길을 터주고자 합니다. 혹시나 나를 지금도 따르는 마음이 있다면 접어주시고, 오직 두마국의 번영에 함께 힘을 보태십시오.” 사실 나라의 편안함과 위태함에 속 썩히는, 골칫덩이에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기에 두말없이 계략에 동조한 하명 또한 짧은 생으로 마감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렇지만 네 형제를 가르친 스승 임하가 꼽은 합하의 자격은 넷째 동명이 가깝다고 했다. 지나가는 말로 던진 알맹이 없는 바람결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수긍하는 마을백성이 많았다. 합하에 등극한 추명은 그렇지 않아도 선례(先例)에 의해 처단해야할 동명이었지만, 스승 임하의 말한 바람결이 얹힌 것처럼 콕콕 쏘는 것을 좌시할 수가 없었다. 주용이 다시 나섰다. 계략이 넘쳐나는 눈가에 주름을 잡고 말을 이어갔다. “합하시여, 지금은 살려둘 때입니다. 선례를 무시하는 처사지만 때로는 칼부림보다는 관용을 베풀어 나라의 평안에 힘을 쓰십시오. 그러면 마을백성들은 다시 합하의 형제애에 눈을 뜰 것입니다. 화평한 나라가 보장되었을 때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