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지역 역사박물관으로 등록된 영천역사박물관은 영천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룬 유물과 전시물이 배치되어 있는 전시, 교육 전문 박물관이다. 영천역사박물관 설립자인 지봉 스님은 영천 지역 역사에 초점을 두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현재 4만여 점의 지역 역사 중심의 문화유산을 수집해 연구하고 있다. 영천역사박물관의 대표 소장유물로 세계 최초 상업용 일간신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민간인쇄조보(521호 등재) 등 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영천의 전통과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보는 영천역사박물관과 함께 위대한 지역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편집자주]지도를 펼쳐 한반도의 척추를 따라 내려오면. 대구와 영천을 품에 안고 웅장하게 솟구친 국립공원 팔공산(八公山), 우리는 이 산을 단순한 영남의 명산으로만 기억해 왔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철저한 고증과 『삼국사기』의 해묵은 텍스트를 한 꺼풀 들추어내는 순간, 경이로운 진실이 가슴을 뛰게 한다.『삼국사기』 권41, 김유신 열전 상(上)에 기록된 원문은 다음과 같다.“건복 28년 신미(611년)에 유신의 나이 17세였다. (중략) 홀로 중악(中嶽)의 석굴에 들어갔다. (중략) 나흘째 되는 날, 한 ‘난승’이라는 스님이 와서 비법을 일러주었다.““···建福二十八년 辛未 庾信年十七... 獨入中嶽石窟... 第四日 忽有一老人... 遂授以秘法····”신라의 ‘`중악(中嶽) 석굴’이 영천 팔공산 중암암 극락굴이라고 가장 먼저 고증하고 일관되게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고(故) 문경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이다. 현재 영천 야사동 대한불교조계종 용화사에서는 제자인 조명래 팔공산연구회장이 (고)문경현 명예교수의 백중(우란분재) 추모 기도를 올리고 있다.1983년 발표한 논문 〈소위 중악석굴에 대하여(所謂 中嶽石崛에 대하여)〉를 통해, 경주 단석산이 아닌 대구·영천의 팔공산이 진짜 김유신의 중악 수도처라고 주장했다.문헌적 근거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등장하는 ‘중악(中嶽)’이라는 명칭은 통일 신라 이후에 정립된 오악(五嶽) 개념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통일 신라의 중악이었던 팔공산이 이에 부합하며, 영천 청통면에 위치한 은해사 부속 암자인 중암암(돌구멍절)의 극락굴을 실제 김유신이 기도했던 중악 석굴로 지목해 왔다.주보돈 교수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문경현 교수의 뒤를 이어 팔공산과 영천 지역의 역사성을 연구해 온 대표적인 원로 역사학자이다. 주보돈 교수 역시 “중악은 팔공산을 지칭하며, 21km에 이르는 팔공산의 꼬리 부분이 바로 영천 중암암 부근이라 예로부터 유명한 기도처였다”고 설명하며 팔공산 중악설과 영천 중암암의 역사적 연관성을 지지하고 있다.유신이 난승을 만난 비법을 구한 1년 뒤, 17살인 612년 『삼국유사』 기이편 김유신 조에는 고구려의 첩자 ‘백석’이 김유신을 고구려로 유인해 시해하려 했던 아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유신이 백석의 꾐에 빠져 고구려로 향하던 중 골화천(骨火川, 지금의 영천 금호강 일대)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이때 세 명의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김유신에게 백석이 첩자임을 폭로하며 “우리는 골화(骨火) 등 세 곳의 호국신(護國神)이다”라고 말한 뒤 사라집니다. 궐화신(골화신)은 신라에 병합된 옛 소국인 골벌국(영천)의 영혼이자 호국신입니다. 신라 왕경의 신이 아닌, 영천의 호국신이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의 목숨을 구해냈다는 이 기록은, 영천이 신라 삼국통일 대업의 정신적·종교적 배후 기지이자 신라 왕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큰 제사를 지냈던 ‘호국의 보루’였음을 완벽히 증명합니다.영천을 중심으로 한 팔공산 자락에는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무예를 닦고 이적을 행했다는 공간들이 촘촘하게 벨트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경산 땅이지만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영천 땅이었던 불굴사(佛窟寺) 홍주암과 장군수(팔공산 남쪽 자락)가 있다.불굴사 위편 절벽에 위치한 독특한 석굴 암자인 홍주암(紅朱庵)에는 김유신이 17세 때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체력과 무예를 연마했다는 기록과 안내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석굴 내부에는 김유신 장군이 수도하며 마셨다는 천연 샘물인 ‘장군수(將軍水)’가 지금까지도 마르지 않고 있다. 거대한 바위 틈인 극락굴(화엄굴)에서 김유신이 신선에게 비법을 받았다는 전설 외에도, 중암암 인근 계곡에는 김유신이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몸을 씻고 칼을 갈았다는 ‘장군폭포’가 전해져 내려옵니다.김유신이 팔공산 석굴에서 수도를 마치고 하산할 때, 그가 타던 말이 나라의 앞날을 예견하듯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승천했다고 하여 ‘울 명(鳴), 말 마(馬)’자를 써서 명마산(불굴사 뒷산이자 팔공산 동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이라 부릅니다. 이 산 꼭대기에는 지휘관의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장군바위(영천·경산 경계 능선)’가 솟아 있습니다.“영천은 삼국사기가 증명하는 김유신의 중악 수도처(중암암)일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가 공인하는 영천의 호국신(궐화신)이 김유신의 목숨을 구해 삼국통일의 맥을 살려낸 ‘ 호국의 요람’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