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정치를 보며 한숨을 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대립과 팬덤 정치 속에서 합리적인 논의는 사라지고, 불신과 혐오만이 가득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맹목적인 지지와 무차별적인 비난이 난무하는 현상은 마치 거울을 보듯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병든 민주주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중용과 상식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중용은 고대부터 중요한 덕목입니다. 공자는 《시경》의 첫 시인 ‘관저(關雎)’를 가르치며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 즉 ‘즐거우나 지나치지 않고, 슬프나 상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동양의 지혜를 집대성한 《중용》은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중’은 공간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것이고, ‘용’은 시간적으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원칙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중용의 정신은 비단 개인의 처세술에 그치지 않고, 복잡한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가장 지혜로운 방법임을 보여줍니다.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정치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이 중용의 길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극단적인 정치적 편향이 넘실대고, 사실에 관계없이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덤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라는 견고한 성에 갇힙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마저 거부합니다.팬덤은 언론의 편향성과 결합해 특정 정파의 입장만 대변하며 자극적인 언어로 양극단의 사고를 부추깁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악의적인 프레임 씌우기와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생산, 유포됩니다. 팬덤의 목소리는 커지고, 그들만의 세계는 더 공고해집니다. 이들의 과격한 목소리가 마치 전체의 목소리고 삶인양 과대 포장될 때, 정치인들은 소신 있는 정책 추진 대신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포퓰리즘에 기대게 됩니다.정치나 삶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식의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식이란, 특별한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다수의 시민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합리적인 판단을 말합니다. 복잡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전문가의 지식보다 상식에 기반한 합리적인 판단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극단적인 팬덤의 목소리가 커질 때,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침묵하는 다수’의 상식적인 목소리가 우리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자극적이지 않고,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맹목적인 지지 대신 냉철한 비판을 하고, 무조건적인 비난 대신 합리적인 대안을 요구합니다. 이들이 가진 힘은 단순히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염원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가짜뉴스와 악의적인 프레임에 현혹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해 치우친 정보를 바로 읽는 법을 알아야 하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과 소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사회 전체의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견해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중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건강한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행위를 넘어, 시민들이 끊임없이 참여하고 토론하며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용과 상식이라는 나침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불신과 혐오의 시대는 이제 끝내고 합리적인 비판과 열린 토론이 살아 숨쉬는, 지금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이 거대한 전환의 물결은 바로 우리의 작은 노력과 실천에서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