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가격 하락으로 영천 포도 농가들이 깊은 시름에 빠진 가운데, 30여 년간 쌓아온 재배와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포도’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농업 현장 전문가가 있다. ‘72미네랄 작목반’을 이끌며 품질 혁신과 판로 개척에 나선 백용 현장교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농민들과 함께 포도밭을 누비는 그의 농업 철학과 영천 포도의 미래를 들어봤다. [편집자주]샤인머스캣 가격 하락으로 영천 포도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배기술 혁신과 품질 고급화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인물이 있다. 30여 년간 포도 재배와 유통 현장을 누빈 백용 현장교수다.그는 현재 영천에서 ‘72미네랄 작목반’을 이끌며 농가들과 함께 프리미엄 포도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농업이 아니라 소비자가 인정하고 시장이 제값을 지불하는 ‘명품 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백 교수와 영천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002년경 회사에서 경기도 화성 송산 포도의 프리미엄화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새로운 산지를 찾게 됐고, 그 과정에서 영천 포도를 접하게 됐습니다.”영천 포도에서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느꼈다. 뛰어난 자연환경과 재배 여건을 갖췄음에도 품질의 균일화와 시장 평가에서는 잠재력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었다.그는 “영천은 일조량이 좋고 수자원이 풍부해 포도 재배에 매우 유리한 곳”이라며 “이렇게 좋은 조건을 갖춘 산지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고 말했다.그의 농업 철학은 현장에서 다져졌다.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처음 도입된 농업 현장교수 제도에서 과일 분야 현장교수로 선발된 그는 당시 전국 포도 분야 현장교수 3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후 전국 주요 포도 주산지를 누비며 재배기술과 농가 현장의 변화를 지켜봤다.그 경험은 영천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지난해 거래하던 9개 농가를 중심으로 작목반을 구성해 본격적인 기술지도에 나섰고, 농가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어지면서 올해는 정회원 32농가와 준회원 17농가 등 모두 49농가가 활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72미네랄’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재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사람도 편식을 하면 건강을 잃듯 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영양소뿐 아니라 다양한 미량요소가 균형 있게 공급돼야 건강한 작물이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그는 토양에서 부족해지기 쉬운 미량 무기염류와 다양한 미네랄의 균형에 주목해 왔다. 그동안 축적한 연구와 재배 데이터를 영천의 자연환경에 적용하면서 맛과 향, 식감은 물론 외형까지 차별화된 포도 생산에 힘을 쏟고 있다.백 교수는 무엇보다 농업은 ‘이론’보다 ‘실천’이라고 강조한다.“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농가의 밭에서 검증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직접 보고, 함께 실천하고, 결과를 확인해야 진짜 기술이 됩니다.”작목반의 성장에도 그는 속도보다 내실을 앞세운다. 내년에는 100농가, 3년 뒤에는 200농가 참여와 연간 1천500톤의 명품 포도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단순한 회원 확대가 목적은 아니다.“실력 있는 농가들이 함께 성장하는 작목반을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재배기술 못지않게 그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유통과 마케팅이다. 고급시장과 중저가시장, 직거래시장 등 소비처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안정적인 농가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과 대만, 동남아 등 해외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은 안정적인 직거래 기반을 활용한 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내외 고가 시장을 적극 공략해 영천 포도의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그는 현재의 샤인머스캣 위기를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닌 영천 포도 산업이 새롭게 변화해야 할 전환점으로 바라본다.“혼자 가면 빠르게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백 교수가 농가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작목반의 슬로건인 ‘PM마케팅(파트너십 마케팅)’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다.“농민 혼자서는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듭니다. 기술을 공유하고, 좋은 상품을 함께 만들고, 유통망도 함께 개척해야 합니다. 농가와 농가가 손을 잡고 함께 변화해야 합니다.”30년 농업 인생의 경험을 들고 영천 포도밭에 다시 뿌리를 내린 백용 현장교수. 그가 꿈꾸는 것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농민들이 정성껏 키운 포도가 제값을 받고, 농가가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농업이다.“영천 포도의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제는 좋은 포도를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대로 평가받고 제값을 받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길을 농가들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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