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불교의 궁극은 성불(成佛), 곧 지혜와 복덕을 갖춘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오타마 붓다의 본생담을 보니 겁이 덜컥 납니다. 우리 중생으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수행이지요.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은 지금 이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듭 윤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만약 아주 어려서 수행의 인연이 주어진다면, 동진출가를 하여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롯하게 깨달음에 전념하는 출가 수행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몇이든 지금 불법 인연을 만났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서원을 세우고 조금씩 알아가며 수행의 길을 가는 거지요. 보폭을 너무 넓게 시작하면 금방 지칠 수 있으므로 나의 체력에 맞는 걸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대승불교에서 성불을 향한 가장 기본수행법으로 육바라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육바라밀은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의 여섯 가지 수행법을 말합니다. 이는 아라한을 증득하기 위한 자기 수행 중심의 팔정도에 비해, 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복덕까지 구족하는 온전한 부처를 이루기 위한 대승의 수행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āramitā)의 음역으로 ‘고통과 번뇌의 이 언덕-차안(此岸)을 넘어 깨달음의 저 언덕-피안(彼岸)으로 건너다.’라는 말입니다. 이 바라밀을 실천하는 수행자를 보디사트바-보리살타(菩提薩埵), 줄여서 보살(菩薩)이라 합니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 같은 분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이미 오랫동안 육바라밀을 닦아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우리는 이런 보살을 마하살(摩訶薩)-큰 보살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근기도 부족하고 세상살이에 물들어 있는 우리는요? 우리도 여섯 가지 바라밀행을 알고 실천하고자 원력을 세우는 순간 초급보살이 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전념하느냐, 조금씩 천천히 하느냐의 차이에 따라 수행의 결과는 달라지겠지만요.첫 번째 덕목인 보시는 아낌없이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아낌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인 줄 알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먼저 ‘나’라는 생각을 없애야 하는데, ‘나’는 엄연히 존재하므로 ‘나’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 ‘나의 것’, ‘나의 생각’을 통칭한다 할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한 강한 집착이 ‘남’과의 차별을 크게 만듭니다. 이것이 성장하여 개인주의, 우월주의, 선민사상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지요. 작금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개인주의나 민족우월주의 같은 현상들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나’가 없이 베푸는 행위를 보시라 하고 마하살은 이 경지에 이르러 누구에게나 차별없는 자비의 공덕을 베풉니다. 절을 찾는 이들이 관세음보살을,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 찾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불자가 마하살을, 교인이 주 예수를 추종하면서 닮아가려 노력한다면 종교는 그야말로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될 것입니다.이훈구자는 원칙이고 호는 소촌으로 지포 이한구의 사촌형이다. 성품이 따뜻하고 어질며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 그리고 염치와 청결함으로 동리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평소 단오 정용기와 함께 세대를 이은 정의(世誼)로 교제하면서 서로 근심과 행복감 그리고 즐거움과 고생을 함께 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다 산남의진이 창의되던 날 스스로를 지방의 참모로 천거하였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의병진의 위세가 여러 번 꺾이고 다시 떨치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몸을 숨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후 광복회가 만들어지자 우재룡, 권영만 등과 연통하여 몰래 대세를 지원하였지만 그 또한 실패하자 문을 닫고 끝내 늙었다.〈원문〉 李勳久는 字는 元則이요 號는 小村이라 芝圃公之從兄也라 性溫良하고 以孝友廉潔노 有鄕里之稱이라 素與丹吾鄭公으로 爲世誼之交하야 憂樂甘苦에 無所不同이러니 及在倡擧之日하야 以地方參謀로 自薦焉하고 未久에 陣勢累敗不振故로 無可奈何而隱身不出이라가 及光復會之起에 通禹在龍權寧萬等하야 暗援大勢러니 又光復會敗에 杜門終老하다 <山南倡義誌 卷下75p>李勳久 義士 略歷(이훈구의사 약력)李勳久(이훈구)는 字(자)는 元則(원칙)이요 號(호)는 小村(소촌)이라 芝圃公(지포공)의 從兄(종형)이라 性稟(성품)이 溫良(온량)하고 孝友廉直(효우염직)으로 향리에 推重(추중)이 있었다 丹吾鄭公(단오정공)과 世誼(세의) 뿐 아니라 意志(의지)가 부합되므로 산남의진이 일어날 때 地方參謀(지방참모)로 指名(지명)이 되어서 진후에 원조하다가 의진이 전말되고 그 후에 광복회 동지 우재룡(禹在龍) 등을 연락하여 암중운동을 하다가 광복청천을 못 보고 逝去(서거)하다 日月鄕誌(일월향지) 에 軍人(군인) 五十名(오십명)을 모집하여 입진시키고 군량미를 원조하였단 기록이 있다 <山南義陣遺史53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