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34)국모(國母)의 간택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뒤흔들 의미심장한 선택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했다. 부부의 연을 맺어 나라를 융숭(隆崇)하게 하는, 혼례는 음과 양의 조화와 대(代)를 이을 확고부동한 심지를 심는큰 틀에서 시작되었다. 마을백성들은 수시로 이루어졌지만, 왕가의 법도에 의해 겨울에만 행해지도록 나라의 혼례는 정해져 있었다. 그것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 어느 날이면, 자손대대로 번성할 기일이라는 믿음은 모두들 굳건했다. 합하 추명은 등극한지 몇 달이 지났지만, 겨울을 기다려 진정한 보위와 모든 인수(引受)를 원칙으로 명실공이 진정한 국부(國父)가 되고 싶었다. 양지부락과 두들부락과 대태부락과 굼돔부락과 평지부락에 파발마가 늦가을부터 재빠르게 움직였다. 국모를 선발하는 취지(趣旨)의 방이 각 부락 곳곳에 나부꼈고, 그렇다고 간택의 요건은 엄격했지만 그 어디에도 자격은 기재되지 않았다. 마을 백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윗사람들의 세상 속에는 한발도 들여놓을 수 없지만 곁눈질하고 축복할 수 있는 자격쯤으로 만족한 채, 가을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한 톨의 알곡이 전부였고, 나라의 평안을 이끌어가는 나라님을 소원했다. 가장 잘 보이는 부락초입에 붙은 방(榜)의 내용은 이러했다. 꽃피는 춘삼월이 가기 전 정월 초이렛날 함박눈은 올 것이다, 마을 백성을 소중하게 여겨 국모를 맞이하리니 뜻이 있으면 도전하시라. 친히 큰 비녀상궁이 납시어 심사하리라. 간택은 자손대대 광명(光名)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그 어디에도 자격에 준하는 엄격함은 쓰여 있지 않았지만, 큰 비녀상궁 유하의 등장으로 자격의 골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굼돔부락 촌장의 셋째 딸인 혜윰이 국모에 간택되었다. 유하는 일찌감치 외모가 출중하다는 굼돔부락 촌장이 둔 세 딸을 염두에 두고 그 주변을 맴돌았다. 복 많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다는 생각으로 과년한 첫째 딸이 아니면 둘째딸에, 그도 아니면 셋째 딸을 낚아채 간다는 궁리가, 어느 정도 가지 밭과 연결되는 성과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앞세운, 작은 상궁이 거두절미하고 대문을 두들겼다. 대문을 열어준 마당쇠가 머리를 조아렸다. 범상하지 않은 외모에 큰 비녀상궁 유하의 날아갈 듯, 차고 넘치는 옷매무새는 모두들 다소곳해지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식솔들까지 길을 터주며 머리를 조아렸다. 눈송이는 앞 다투어 마을을 비좁게 찾아들고, 하늘과 산과 들은 이미 겨울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눈송이를 흠뻑 맞으며 굼둠부락 촌장을 기다리는 유하의 눈빛은 매서웠다. 지체되는 것에 마음을 졸이던 마당쇠가 싸리 빗자루를 들고 총총하게 안채와 연결되는 길을 내었다. 굼돔부락 촌장 벽서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눈발을 뒤집어 쓴 유하의 존재 앞에 스스로 허리가 꺾였다. 궁궐 안에서도 위세에 눌린 신하들이 태반이었고, 상궁이면서 작두를 타는 무당의 칼은 장군신이 내렸을 때 신의 영험함을 보여주기 위해 올라타는 무구(巫具)로 쓰이는 쌍작두에서 알 수 있었다. 유하는 외작두와 굿판의 득세를 위한 쌍작두를 번갈아 사용하며 기를 죽였다.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같은 고유한 장단의 접목은 이제껏 외곬로 나앉은 굿판을 마을백성 속으로 가져오는데 일조를 했다. 그 공로로 큰 비녀상궁의 벼슬도 겸하게 되었다. 그런 큰 비녀상궁 유하의 방문은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뭣들 하느냐. 큰 비녀상궁님을 안채로 정중히 모셔라!”